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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만나는 세상/어디에 선들 어떠랴

팽나무 처럼


어디에 선들 어떠랴


『작가후기』

지면을 통해 시를 처음 발표한 지 열다섯 해만에 시집 하나 엮는다.

그 사이 개인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실로 감당하기 힘든 달라짐이었다.

이래저래 부대끼면서도 내가 얻은 소중함은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늘 튼실하게 함께 했으면 좋겠다.

이 시집을 엮으면서 남기고 싶은 글보다 조악하기 때문에

버리고 싶은 것들이 훨씬 많다.

삶의 터전을 담고 싶었는데 오히려 흠집만 낸 느낌이다.

허나 어찌할 것인가,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것들조차 이미 나의 한 부분인 것을...!

바램이 있다면 이 빈약한 시가 어려운 시절에 함께 했던, 지금도 하고 있는,

섬을 사랑하는 여러 벗들에게 그나마 갈기갈기 씹히는 안주감이라도 되면

그냥 참 좋겠다.

정축년 정월 대보름

- 시인 김수열 -


-팽나무처럼-


팽나무처럼
 

까마귀와 더불어

겨울을 나는 팽나무처럼 살아가리

바람 부는 땅에 서서

바람더러 예 있으라 하고

바람더러 어서 가거라 손짓하는

저 팽나무처럼

나 살다 가리

<1996>


사랑하는 그대여
 

왜 모르겠는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것마저

아주 변해 버렸음을

그 아쉬움을

그래서 더욱 안타까움을

낸들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그대여

오름 있는 들판을

지나온 계절은 어둠 속에서

오히려 눈이 부시듯

우리가 부르던 노래 잊지 말기로 하세

낮은 소리로나마

다시 부르기로 하세

지금 들어주는 이 없어도

그때 그대가

나에게 들려준 것 처럼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 노래 다시 불러보려내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