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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만나는 세상/어디에 선들 어떠랴

축가 (부제 : 어디에 선들 어떠랴)


어디에 선들 어떠랴


『작가후기』

지면을 통해 시를 처음 발표한 지 열다섯 해만에 시집 하나 엮는다.

그 사이 개인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실로 감당하기 힘든 달라짐이었다.

이래저래 부대끼면서도 내가 얻은 소중함은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늘 튼실하게 함께 했으면 좋겠다.

이 시집을 엮으면서 남기고 싶은 글보다 조악하기 때문에

버리고 싶은 것들이 훨씬 많다.

삶의 터전을 담고 싶었는데 오히려 흠집만 낸 느낌이다.

허나 어찌할 것인가,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것들조차 이미 나의 한 부분인 것을...!

바램이 있다면 이 빈약한 시가 어려운 시절에 함께 했던, 지금도 하고 있는,

섬을 사랑하는 여러 벗들에게 그나마 갈기갈기 씹히는 안주감이라도 되면

그냥 참 좋겠다.

정축년 정월 대보름

- 시인 김수열 -


축가 (부제 : 어디에 선들 어떠랴)


어디에 선들 어떠랴

엄동설한 살얼음 녹인

그대와 나의 불씨

그 불씨 다시 살아

부끄럼 없는 하나가 되었는데

어둠을 헤치는 불꽃 크나큰 사랑인데

어디에 선들 어떠랴

험하디 험한 산골짝

기름때 묻은 단칸방

어화둥둥 내 사랑인데

어디에 선들 어떠랴

그대 내 위함이

풋풋한 사랑으로 영글어가듯

내 그대 그리워함이

활활 타오르는 불이 된다면

어디에서라도 좋아라

파도 휘몰아치는 외딴 방파제에서

사랑으로 뱃길 인도하는 등대로 살아도 좋아라

생선 비린내 나는 시장 골목

모질디 모진 빌레 위에서라도

그대와 맞잡은 손이라면

아우러져 이렇게 하나 된다면

어디에서라도 좋아라

어디에서라도 좋아라

<1986>